일을 하지 않은지 3주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3주동안 '요즘 어떻게 지내냐'란 질문에 '너무 바빠'란 대답을 했었습니다.

도대체 백수가 왜 바쁜것인지...그것도 '너.무' 바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다고 딱히 기억에 남은 사건도 기억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오늘은 3주만에 정말 특별한 약속도 계획도 없는 첫날입니다.

(어젯밤엔 내일 출근해야하는 직장인의 슬픈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크게 함박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습니다)

 

4월이 되어 읽기 시작한 책 만 6권이 됩니다.

그 중 반절이상 읽은 책은 물론 단 한권도 없습니다.

비어있는 시간 속에서 비어있는 책읽을 시간을 만드는 일이 이상하게도 죄스러워서

매일같이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뭔가를 하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지난주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이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신영복의 언약'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처음처럼'은 일반책의 두배두게의 책이지만

페이지에 짧은 글과 신영복선생님의 서예나 그림으로 채워져서 꽤나 여백이 많은 책입니다.

무엇보다 사색을 통해 쓰여진 진한 사유의 글들이 책의 두게보다 더 두터운 이야기를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책의 1/5가량을 읽었고

'오늘은 이책을 다 읽어 버리리라' 결심을 하여 집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시간반가량이 흘렀고 남은 책의 분량이 1/5가량이 남은 것을 보고

'음..오늘 다 읽을 수 있겠구나' 개운해 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이 책을 읽었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책을 다 읽어 간다며 뿌듯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자친구는

'그 책은 사색이나 묵상같은 책인데 왜 그렇게 빨리 읽어요?' 라며 질문을 하였습니다.

 

 

 

남자친구와 자주 책을 함께 읽습니다.

그때마다 남자친구는 저의 속독에 놀라했습니다.

소설이든 철학이든 책의 난이도와 종류에 관련없이 대개 저는 속독을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의 시작은 바야흐로 12년 전 고등학교 3학년시절로 되돌아가야합니다.

그 당시 모의고사를 칠때면 언어영역에서 늘 시간이 모자라 마지막엔 풀지못한 문제의 답을 몰아찍기 일수 였습니다.

그때부터 글을 속독하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단어하나하나의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문장전체를 통으로 읽어버리는 연습을 했던 것입니다.

시험문제를 풀기위한 글읽기를 열심히 단련했던 것이 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는 방법은 독서에서 뿐만이 아니라 저의 삶에도 묻어나 있습니다.

'정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어느정도의 오차없이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기'의 삶의 방법이 어느새 스스로가 되어있었습니다.

 

반면 남자친구는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속독하는 스스로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독서를 통해 천천히 다양한 사고를 해나가는 남자친구를 보며

나의 독서 방법은 '빈깡통 같은 독서' 였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확대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러다 나의 삶이 '빠르게 굴러간 빈깐통'이 되어버릴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합니다.

쉽게 흘러간 지난 4월의 여러날들처럼 어제일도 기억나지 않을만큼의 가벼운 시간들로

제 삶이 채워져 버린다면 -

 

그래서 오늘은 '처음처럼'을 더 이상 읽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남은 1/5의 글들은 천천히 그 글의 깊이를 해아리며 읽어보려 합니다.

새로운 독서 방법이 새로운 삶의 방법을 위한 작은 시작이길 바라며 :)

 

 

 

 

 

 

 

 

 

 

 

 

 

 

 

 

 

 

퇴직

실업

백수

구직

이직

.

.

.

단어들이 거칠거칠하고 퍽퍽하기 그지없습니다.

 

취업

.

.

.

이란 단어도 그다지 세련되지도 따뜻하지도 않네요.

 

그 단어들 속에 제 퇴직의 이유 중에는 '임.금.체.불' 이라는 텁텁하고 쓰디쓴 단어와

청산되지 않은 '임금' 이라는 공허한 단어들도 둥둥 떠다닙니다. 

아직도 관할고용센터 직원이 저를 보며 말한  '안쓰럽다'는 단어가 제 귓 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안쓰럽다'는 말에

'제가 미련했습니다' 라고 멋적게 대답하였습니다.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한 지난 시간은 안쓰러움과 미련스러움으로, 또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2016년이고 누워서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티비도 보고

미국에 있는 친구와 화상통화도 하는 시대에 -

건축이라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온 학문을 공부하고 업으로 삼아온 저란 사람은

그 역사의 고리 덕분인지, 시대착오적인 노동과 정당한 분배에 대한 문제로 인해

 

3년 6개월 만에 드디어! 백수가 되었습니다.

백수 말고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실업자 . 구직자. 뭐 그런거 말고 ..)

자연인-이라고 할까요?

 

 

그래, 도시 속 자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낮시간에 병원도 갈 수 있고

시간에 쫒기지 않고 마음껏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아침에는 강아지와 긴 산책도 할 수 있고

그동안 미뤄뒀던 취미생활도 하려합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할 수 있는 것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해 보려 합니다.

 

3년 그리고 6개월

그동안 좋은 동료들과 함께 재밋게 또 열심히 다녔던 일터를 떠나는 날

한가득 품에 짐을 안고서 너무 환하게 웃어버렸습니다.

'하나의 매듭이 묶여지는 순간이구나..' 라는 생각에 정말 환하게 웃으며 건물을 나왔습니다. 

 

 

 

 

 

2012. 11. 1~ 2016. 3. 28

bye bye!

 

  

집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옷을 챙겨입고는 회사로 나갑니다.

그 사이 집에서 지온이(4세.멍멍이)는 저를 기다리며 새를 쫒기도 하고

골목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멍!' 하고 인사도 하겠지요.

옆방에 사는 친구는 오전의 끝무렵 씻고 외출 준비를 마치고 동네 옷가게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갑니다.

그 사이 수많은 구름들이 마당에 그림자를 만들고

엊그제 주문한 택배를 배달하는 배달부 아저씨의 방문에 지온이는 또 '멍!'하고 짖을 것입니다.

바람이 차가워 지고 해가 뉘였하면, 저는 집으로 돌어와 간단히 밥을 먹고나서

따뜻한 차한잔 이나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쓰기도, 책을 읽기도 합니다.

잠들기 전 남자친구와 전화로 긴 대화를 나누고 나서 스르르 잠이 듭니다.

이렇게 1년 365일의 대부분은 지온이의 지루한 하루하루처럼, 가회동 3ㅈhouse는 평범한 일상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러다 가끔은, 한달에 한번 혹은 두달에 한번

가회동 3ㅈhouse에는 특별한 콘서트가 펼쳐집니다.

2014년 5월부터 '쌩목콘서트'라는 이름으로 2015년 11월 까지 총 8번의 어쿠스틱 콘서트가 집에서 열렸습니다. 

지금은 이사 간 옆방친구 '미소'와 함께 기획한 하우스콘서트였죠.

미소의 이사와 함께 아쉽게도 2년간의 '쌩목콘서트'는 유종의 미를 거두웠습니다.^^

 

공연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지온이를 격렬하게 산책시키고 ^^ 집안 이곳저곳의 먼지들을 털어내고

화장실도 반짝이게 청소를 합니다. 어떤날은 30인분의 음식을 주방에서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하루종일 손님맞이, 공연준비에 그 전날부터 바짝 긴장을 하곤 합니다.

 

지난 토요일 2016년 2월20일 오후 5시

이번엔 특별히 '세상에서 가장작은 콘서트: 홈메이드 콘서트'의 30번째 콘서트가 가회동 3ㅈhouse에서 열렸습니다.

 

약 1주 전부터 홍보를 하고 예약을 받았습니다.

소규모하우스 콘서트여서 예약은 20명 한정이었고 콘서트 3일 전 조기매진도 되었습니다.^^

이번 콘서트는 22명이 예약을 해주셨고 약 25명의 사람들로 방과 거실이 꽉찼습니다.

제방의 침대와 옷걸이를 작은 방으로 옮기고 방과 거실사이의 미닫이문 2짝을 떼어 한쪽 벽에 붙여 두었습니다.

일상을 책임지던 방과 거실은 무대와 관객석으로 바뀌었고,

비로소 한 단번, 단 한곳의 특별한 공연장이 되었습니다.

 

 

 

 30번째 홈메이트 콘서트의 뮤지션 '싱어송 라이터 임현정' 님과 '지고'님 

어릴적 상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명가수가 내방에서 노래를 해주는 상상.. ^^

살다보면.. 그런날이 정말 오게되네요 :)

 

 주택가에 위치한 3ㅈhouse여서 한번도 음향장비를 써서 공연을 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신기한 장비들이 방안을 채워 좋은 소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랜시간 한쪽 벽을 채워준 저의 책장이 오늘은 특별히 무대의 뒷 배경이 되었습니다.

노래의 감정이 모두의 발까락으로 표현된 :) 진~한 공연이었습니다.

양파같은 매려의 '지고'씨의 음악에 모두들 푹 빠져버렸습니다.

오후5시에 시작된 공연은 7시가 다 되어 끝이 났습니다.

 '지고'님의 그 옛날 만드셨다는 '고양이'라는 곡과 함께...

 

 

집으로 들어오듯,

버스에 내려 골목을 걸어 대문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관객들을 이 공연장에 들어오게 됩니다.

낯선 방은 이지만, 단지 방이어서 편안한 그곳에 앉아 음악을 듣습니다.

 

나의 바로 앞, 무대도 객석도 구별되지 않는그곳에서 진심을 다해 뮤지션은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합니다.

뮤지션들은 시간을 여행하듯 그들의 비밀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집은 슬픔과 기쁨 우울함 즐거움 ... 많은 감정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기에 매번 공연이 열릴 때마다 저의 비밀과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비밀이 뒤섞여서

제게는 세상에 단 한뿐인 공감과 추억을 '집'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오신 모든 분들이 그러하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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