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가옷의 썩다니

 

지난주 처음으로 '요가복'을 구입했습니다.

요가를 시작한지 1년하고 3개월이 지나서 나에게 어울리는 색과 디자인의 요가복을 구입했고

이제야 또다른 의미로 '요가를 할 준비'를 하는 기분입니다.

지난 1년반가량 입었던 요가옷은 유니클로에서 구입한 스포츠 티셔츠 였는데 나의 옷이기 보다는 운동을 위해 구입한 준비물같은 것이랄까요- 필요에 의해 대충사서 입게된 옷이었습니다.

밖에서는 입지 못하고 요가원에서만 운동을 위해 입던 옷이었고 나의 몸의 부피를 감추기 위한 옷이었기도 하고 집에 와서 세탁기에 손쉽게 빨수도 있는 옷이었습니다. 

얼마전 세탁을 한 요가옷을 입고 요가를 했었는데 덜마른 빨래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서 또 한번 세탁을 했고- 그 후에 또 요가옷을 입고 요가를 했을때 또 같은 냄새가 났습니다.

1년반이 지나 더이상 그 요가옷은 나의 땀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 같았습니다.

나는 신기하게도 '요가옷이 썩을 정도(설마...썩지는 않았겠지만 ^^;)의 시간동안 요가를 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2. 괴로웠던 요가원의 전신거울

 

지난 3월쯔음 부터 요가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8월말의 결혼을 앞둔 30대의 건축설계에 종사하는 여성이었고 다이어트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몸의 모습보다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었습니다.

건축학교에서 7년간, 졸업후 6년간- 강산이 바뀌는 동안 저의 몸은 장기간 컴퓨터 작업에 노출이 되어 자세는 굳어있었고 몸 이곳 저곳에서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비루해지는 동안 마음은 늘 급했고, 퇴근후 마시는 맥주가 유일한 해방구 였습니다. 

건강검진을 할때 일주일 몇회 술을 마시냐는 의사선생님의 질문에 좀 축소해서 '3-4일이요" 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너무 많이 마신다고 지적을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그당시 일주일에 7일 꾹꾹 눌러서 술을 마시고 살았습니다.

 

사실 요가를 완전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대 초반쯤 그 당시 요가가 선풍적으로 유행을 했었어서 그 유행에 따라 요가원에 간적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밤샘작업을 해서인지 요가원에 가서 스트레칭을 하다 잠들기 일수였었습니다. 호흡은 불편했고- 정신은 다른곳에 가있었기 때문에 요가를 해야하는 이유나 효과도 느끼지 못한채 요가를 중단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요가를 피해왔었는데 그 강력한 이유 중 하나는 요가원 전면 거울에 비춰진 저의 몸이었습니다.

적나란 조명아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저의 모습을 보는것이 괴로운 일이었고

더 괴로운것은 다른사람들의 늘씬한 몸과 나의 몸을 비교하는 저 스스로였습니다. 

그때부터 딱붙는 요가옷은 욕망과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지난해로 돌아가보면, 지난 3월 회사 근처 모 프랜차이즈요가원에서도 그 괴로움은 반복이되었습니다.

예쁜몸을 만들기 위한 요가원이었고 저는 또 그 전신거울 앞 놓이게 되었습니다.

'요가원들은 다 이렇기만 괴로운 곳인가?' 라는 생각이 들던 중

학교선배 언니가 요가선생님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요가원의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언니의 SNS속 사진은 내가 괴로움을 느끼던 그 요가원들과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었고,

사진 속 언니의 모습도 뭔가 이전과 달라 보였습니다. 그윽하고 분명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곳으로 가보자!'

마침 옆동네에 그 요가인 '요가라마홀리스틱'이 있었습니다. 

처음 요가원을 갔을때는 다이어트와 적절한 운동을 목적으로 갔었습니다. (마음도 편안해진다면 더 좋고- 정도의 생각)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하였는데, 저는 지금 요가 속에 살고 있습니다. 

 

#3. 요가라마홀리스틱

 

전면에 전신거울이 없는 요가에 처음 가보았습니다.

전신거울 대신 깊이감이 있는 흰벽에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만다라가 있었고, 천정에서 내리쬐는 흰 조명 대신,

공간을 은은하게 비추는 노란간접조명이 수련장안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요가라마홀리스틱? 엄청 신성하다란 뜻인가?' 그러고 보니 뭔가 신성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요가원 소개글에 그 '요가라마홀리스틱'의 뜻이 소개되어있습니다.

요가라마(yogarama): 요가를 수행하는 행복한 장소

홀리스틱(holistic): '전체적인'이라는 뜻

요가수련을 하는 이 공간이 좀 더 몸과 마음의 통합적인 계발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도를 담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 동안 몸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내마음이 내마음같지 않음'을 자주느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요가원에서의 수련의 시간은

잠시 생각을 멈추고 호흡과 몸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바쁜 일상생활 속 나는 '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틈도 없이, 시간이 흐는 것도, 내 몸이 망가지며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적도 없었고, 마음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닿을 틈도 없이 살아 왔었습니다.

처음 요가원에서 요가를 했을때 선생님들이 

"생각이 들때는 생각을 생각이라 이름을 붙이고, 호흡에 집중을 하세요" 라고 가이드를 해주셨는데

그때서야 내가 들숨과 날숨을 하는 2,3초의 시간속에도 내 머릿속에는 번게처럼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내가 끊임없이 그 생각들을 쫓아가고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나는 끊임없이 속에서 살며 몸은 쉬고 있지만 생각이 쉬지 못했기에 늘 피곤하고 늘 조바심이 들었다는 것을 느끼게되었습니다.

저에게 요가라마홀리스틱에서 수련을 하는 시간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 생각의 멈춤을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현재에 있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 ' 이 되었습니다.   

#4. 요가를 잘하세요?

1년 넘게 요가를 수련하고 요가 속에서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누군가 요가를 잘 하냐고 물으면 저는 '아직 잘못해요'라고 말을 하고 정말 '잘'하지는 못합니다.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부족한것은 절대 아닙니다.

요가원에는 저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분들 중에 엄청나게 잘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어떠한 동작이나 레벨업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비교하지 않고, 그 사람의 신체적 특성에 대해 동작에서 불편하거나 힘든부분을 알려주십니다.

저는 요가를 기술적으로 잘하기 보다는 저의 몸에 맞게 좀더 천천히 요가동작을 익힌다는 마음으로

요가를 하고 있습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호흡과 동작에 집중하는 것이 요가의 즐거움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마음 편히 요가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요가가 필요할 때 자유롭게 요가원을 찾아 갈 수 있다는 점이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오전, 점심, 저녁 수업이있고 저녁수업은 1시간10분 간격으로 수업들이 있어서 원하는 시간에 요가수련을 할 수 있고

가끔은 하루에 2회 연속으로 수련을 하기도 합니다. 

요가수업도 상체를 중심으로한 'UPPER 얼라인' 하체를 중심으로한 'LOWER 얼란인'

코어근육단련에 좀더 집중된 '코어필라테스'

호흡과 함께 물흐르듯한 연속된 시퀀스로 진행되는 '아쉬탕가'

아쉬탕가동작에 좀 더 깉은 호흡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는 '호흡빈야사'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하타요가' -특히 하타요가를 하면 마음에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6개의 수업이 있고 매달 짜여지는 시간표를 보고 원하는 수업시간에 수련을 하면 됩니다.

한 수업안에서도 선생님들이 1,2,3단계 동작을 한번에 보여주시기 때문에 자신의 레벨에 맞는 동작으로 수련을 하면됩니다. 여러 레벨의 사람들이 어울러져서 수련하는 것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5. 걸으면서 명상하기  

 

그리고 요가마라 홀리스틱의 또 하나의 특별한 점은 아율원장님이 진행하시는 매주 목요일의 '명상'수업과

수업의 연장선에 있기도 한 '아율마인드워크' 입니다.

어느날 마음이 무작정 답답해서 우연히 목요일 명상수업에 참여하였습니다. 

저는 이전에 명상을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명상이 무엇인지' 호기심 있었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었습니다.

다행이 수업초반 명상이나 마음에 대해 강의를 해주셔서 명상에 대해 보다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매주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을 나누고 명상을 수련하고 수련 후 요가원 로비에서 차를 마시며 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명상을 통해 현재에 있는것을 경험하는것이 요가수련과도 깊이 연관이 되어있었고

성격이 급하고 직설적이어서 종종 주변사람들과 스스로를 괴롭게 했던 저의 태도와 생각의 방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수업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걷기명상'은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하고 있고 무언가 마음에 큰 감정이 들때는 그 감정 속에 갖히지 않게 '알아차림'을 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명상 수업이후 '아율마인드워크'에서 진행하는 '인사이트' 프로그램에도 참여를 하고 있는데 좀 더 저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며 내가 어떤사람인지를 공부하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6. 사람들

 

요가입구에 들어가면 늘 반갑에 인사해주시고 요가원에 대해 궁금한점을 꼼꼼히 설명해주시는 '연우선생님'

그리고 요가원의 청일점이신 참요가인^^ 'YB원장님'

원장님이 남자분이 어서 그런지 요가원에는 남자회원분들이 꽤 많습니다.

저의 동거인도 저와 함께 요가수련을 1년째 하고 있습니다.

정답고 섬세하게 지도해주시는 흥부자 'SIO선생님', 밝은 에너지 가득한 'DAYA선생님'

그리고 따뜻한 미소와 엄청난 통찰력을 가지신 '아율원장님'

요가원의 모든 선생님들이 진심을 다해 요가와 명상수업을 지도해 주시기 때문에 요가원에 들어가면 무거웠던 마을도 한결 가벼워 지고, 좋은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30대에 요가를 시작한 것과 그곳이 요가라마홀리스틱이라는 것이 저에게 굉장히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 '내 몸이 내 마음 같지 않다'를 느낀다면 저는 주저없이 '요가'를 추천 할 것입니다.

물론 그곳이 '요가라마 홀리스틱'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을 요가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https://blog.naver.com/yogaramah

 

요가라마 홀리스틱 : 네이버 블로그

경복궁역 서촌, 요가 전문센터. 2018년 새로 오픈 윤범(YB)원장의 유일한 직강/직영점. 25년 경력 노하우의 진짜 몸이 바뀌는 요가! 리뷰: 네이버 카페 "요가라마" 한성대 (2010-2017.1월 운영)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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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욕망이 솠아 오르는 때가 있습니다.

느닷없이 성난 화산처럼 분출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시간 저 지하어딘가에서 서서히 마그마가 끓어 오르다 어느날 지표면에 작은 틈새가 생긴,

바로 그 타이밍에 비소로 스물스물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용암같은 욕망 말입니다.

백두산과 한라산으로 치자면 한라산 같은 뭉근한 산봉우리를 결국 만들어내는 욕망이죠.

저의 대부분의 욕망은 '한라산'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분명 뜬금없는데 자연스러운 새로운 욕망이 기억도 나지않는 시절부터 생겼었습니다.

바로 '무언가를 엮어서 짜고 싶다'라는 마음이었죠.

무엇을 어떻게 엮을 것인가를 고민하다 '직조'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퇴사하면 무얼할거냐라는 질문에 입버릇 처럼이야기 했습니다.

'직조'를 배울거라고!

 

그리고 3월31일 퇴사 이후 약 2주 뒤부터 망원동의 일명 '공방골목'에 위치한 '직조생활'에서 직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직조' 와 '생활'이란 두 단어가 있는 동네의 길거리가 보이는 공방에서 '은실'쌤을 만나

2개월 동안 열심히 먹고 짜고 마시고... ^^ 우리의 일상의 일부분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직조는 서로다른 2방향의 실들이 교차하면서 직물을 만들어 냅니다.

한올 한올의 실을 선택 할수 있고 틀린부분이 있으면 아쉽지만 다시 풀어 수정을 할 수 도 있습니다.

한땀한땀이 시간이고 정성이어서 하나의 직물은 오롯히 그 시간을 담아내서 직물은 단순히 미학적인 결과물 뿐만이아닌

시간에 대한 정직한 결과물을 이기도 합니다. 

그 단순한 의미와 행위가, 뭐하나 마음대로 만들수 없고 시작과 끝을 알 수없는 복잡한 이 시대에 명쾌한 위로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겨울의 한가운데인 요즘도 퇴근을 하고나서 베틀앞에 앉아 가만히 작업을 할 때가 있습니다.

(2달간의 수업의이 끝나고 저는 과감하게 베틀을 구입하였습니다.)

서두르면 실수가 생기기 때문에 '느리게' 실을 한올한올 궤어야 합니다.

느린것이 놀림거리가 되고 단순한 것이 비웃음거리가 되는 요즘-

단순해야만 하고 느려야만 하는 이 행위를 통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저뿐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 어느 길거리 마켓에서 직조한 작업물을 들고 물물교환을 시도하거나 판매를 하는 저를 발견 하실 수도 있습니다 :)    

 

 

+망원동 직조생활에서의 작업모습

+집 창가에 걸려진 이것저것들

 

+직물을 이용해서 가방도 만들었습니다.

 

+안입는 옷들을 잘라 실을 만든 후 러그도 짜보았습니다:)

 

 

 

                                                     

"장사하자 먹고살자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대한민국의 하루~"

라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노래가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본인들의 곡인지 공익광고에 쓰인 노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라디오를 듣다 보면 자주 듣게 되던 그 대목-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가 만든 요리를 판매 했습니다.

간단한 먹거리가 아닌 '요리'로 말이죠 :)

이름하야 [Sunday Brunch]

제 여행의 기억들과 현재의 취향이 만나 만들어진 메뉴와 레시피로

매주 일요일 아현동 '언뜻가게'에서 브런치를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메인메뉴는 단 2개

그 외에 직접담근 과일청을 이용한 음료도 준비하였습니다.

매일매일 하던 요리가 왜 이리 부담스러워지던지...

일주일 내내 피클도 담고 리코타치즈, 달래 페스토, 레몬청을 만들었습니다.

아침에 빠진 재료가 없는지 확인하고

짐을 챙겨 아현동으로 향하는 길에는 심장이 두근두근 떨리기도 했습니다.

 

5월의 음식은 저의 첫 배낭여행지이기도 했던 남미의 기억을 담은

'아보카도 오픈 샌드위치 + 바나나를 올린 리코타치즈 오픈 샌드위치' SET와

한국의 봄과 이탈리아의 일상을 조합한 '달래페스토 파스타' 입니다.

 

제 일상요리의 주된 영감의 재료인 남미(특히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를

가볍게 음식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달래페스토 파스타에는 제 친동생이 좋아하는 '제노베제 파스타'를 한국식으로 변형을 하였고

'오픈샌드위치'는 저의 친한 친구인 엄주의 추천 레시피도 함께 반영하여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그릇의 음식인데도 왜이리 엮인 이야기들이 많은지 ...^^

 

앞으로도 매달 이야기 가득한 음식들로 Sunday Brunch를 채울 생각입니다.

각 메뉴에 담긴 자세한 이야기와 레시피도 곧 공개 하겠습니다.

 

첫 장사를 개시한 오늘- 장사하는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온 몸은 피곤으로 뒤덮혔지만-

무언가를 '시작했다'라는 뿌듯함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메뉴판도 직접 손으로 쓰고 그리고 붙여 만들었습니다. ^^

 

 

 

 5월의 메뉴들 입니다. 봄이 한가득 느껴지시나요?

 

 

 Sunday Brunch

When: 매주 일요일 AM11:30~PM 6:00

Where: 마포구 아현동 653-9번지(이대역 5번출구) '언뜻가게'

 

일을 하지 않은지 3주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3주동안 '요즘 어떻게 지내냐'란 질문에 '너무 바빠'란 대답을 했었습니다.

도대체 백수가 왜 바쁜것인지...그것도 '너.무' 바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다고 딱히 기억에 남은 사건도 기억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오늘은 3주만에 정말 특별한 약속도 계획도 없는 첫날입니다.

(어젯밤엔 내일 출근해야하는 직장인의 슬픈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크게 함박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습니다)

 

4월이 되어 읽기 시작한 책 만 6권이 됩니다.

그 중 반절이상 읽은 책은 물론 단 한권도 없습니다.

비어있는 시간 속에서 비어있는 책읽을 시간을 만드는 일이 이상하게도 죄스러워서

매일같이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뭔가를 하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지난주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이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신영복의 언약'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처음처럼'은 일반책의 두배두게의 책이지만

페이지에 짧은 글과 신영복선생님의 서예나 그림으로 채워져서 꽤나 여백이 많은 책입니다.

무엇보다 사색을 통해 쓰여진 진한 사유의 글들이 책의 두게보다 더 두터운 이야기를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책의 1/5가량을 읽었고

'오늘은 이책을 다 읽어 버리리라' 결심을 하여 집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시간반가량이 흘렀고 남은 책의 분량이 1/5가량이 남은 것을 보고

'음..오늘 다 읽을 수 있겠구나' 개운해 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이 책을 읽었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책을 다 읽어 간다며 뿌듯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자친구는

'그 책은 사색이나 묵상같은 책인데 왜 그렇게 빨리 읽어요?' 라며 질문을 하였습니다.

 

 

 

남자친구와 자주 책을 함께 읽습니다.

그때마다 남자친구는 저의 속독에 놀라했습니다.

소설이든 철학이든 책의 난이도와 종류에 관련없이 대개 저는 속독을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의 시작은 바야흐로 12년 전 고등학교 3학년시절로 되돌아가야합니다.

그 당시 모의고사를 칠때면 언어영역에서 늘 시간이 모자라 마지막엔 풀지못한 문제의 답을 몰아찍기 일수 였습니다.

그때부터 글을 속독하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단어하나하나의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문장전체를 통으로 읽어버리는 연습을 했던 것입니다.

시험문제를 풀기위한 글읽기를 열심히 단련했던 것이 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는 방법은 독서에서 뿐만이 아니라 저의 삶에도 묻어나 있습니다.

'정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어느정도의 오차없이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기'의 삶의 방법이 어느새 스스로가 되어있었습니다.

 

반면 남자친구는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속독하는 스스로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독서를 통해 천천히 다양한 사고를 해나가는 남자친구를 보며

나의 독서 방법은 '빈깡통 같은 독서' 였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확대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러다 나의 삶이 '빠르게 굴러간 빈깐통'이 되어버릴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합니다.

쉽게 흘러간 지난 4월의 여러날들처럼 어제일도 기억나지 않을만큼의 가벼운 시간들로

제 삶이 채워져 버린다면 -

 

그래서 오늘은 '처음처럼'을 더 이상 읽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남은 1/5의 글들은 천천히 그 글의 깊이를 해아리며 읽어보려 합니다.

새로운 독서 방법이 새로운 삶의 방법을 위한 작은 시작이길 바라며 :)

 

 

 

 

 

 

 

 

 

 

 

 

 

 

 

 

 

 

퇴직

실업

백수

구직

이직

.

.

.

단어들이 거칠거칠하고 퍽퍽하기 그지없습니다.

 

취업

.

.

.

이란 단어도 그다지 세련되지도 따뜻하지도 않네요.

 

그 단어들 속에 제 퇴직의 이유 중에는 '임.금.체.불' 이라는 텁텁하고 쓰디쓴 단어와

청산되지 않은 '임금' 이라는 공허한 단어들도 둥둥 떠다닙니다. 

아직도 관할고용센터 직원이 저를 보며 말한  '안쓰럽다'는 단어가 제 귓 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안쓰럽다'는 말에

'제가 미련했습니다' 라고 멋적게 대답하였습니다.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한 지난 시간은 안쓰러움과 미련스러움으로, 또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2016년이고 누워서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티비도 보고

미국에 있는 친구와 화상통화도 하는 시대에 -

건축이라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온 학문을 공부하고 업으로 삼아온 저란 사람은

그 역사의 고리 덕분인지, 시대착오적인 노동과 정당한 분배에 대한 문제로 인해

 

3년 6개월 만에 드디어! 백수가 되었습니다.

백수 말고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실업자 . 구직자. 뭐 그런거 말고 ..)

자연인-이라고 할까요?

 

 

그래, 도시 속 자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낮시간에 병원도 갈 수 있고

시간에 쫒기지 않고 마음껏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아침에는 강아지와 긴 산책도 할 수 있고

그동안 미뤄뒀던 취미생활도 하려합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할 수 있는 것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해 보려 합니다.

 

3년 그리고 6개월

그동안 좋은 동료들과 함께 재밋게 또 열심히 다녔던 일터를 떠나는 날

한가득 품에 짐을 안고서 너무 환하게 웃어버렸습니다.

'하나의 매듭이 묶여지는 순간이구나..' 라는 생각에 정말 환하게 웃으며 건물을 나왔습니다. 

 

 

 

 

 

2012. 11. 1~ 2016. 3. 28

bye bye!

 

  

집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옷을 챙겨입고는 회사로 나갑니다.

그 사이 집에서 지온이(4세.멍멍이)는 저를 기다리며 새를 쫒기도 하고

골목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멍!' 하고 인사도 하겠지요.

옆방에 사는 친구는 오전의 끝무렵 씻고 외출 준비를 마치고 동네 옷가게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갑니다.

그 사이 수많은 구름들이 마당에 그림자를 만들고

엊그제 주문한 택배를 배달하는 배달부 아저씨의 방문에 지온이는 또 '멍!'하고 짖을 것입니다.

바람이 차가워 지고 해가 뉘였하면, 저는 집으로 돌어와 간단히 밥을 먹고나서

따뜻한 차한잔 이나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쓰기도, 책을 읽기도 합니다.

잠들기 전 남자친구와 전화로 긴 대화를 나누고 나서 스르르 잠이 듭니다.

이렇게 1년 365일의 대부분은 지온이의 지루한 하루하루처럼, 가회동 3ㅈhouse는 평범한 일상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러다 가끔은, 한달에 한번 혹은 두달에 한번

가회동 3ㅈhouse에는 특별한 콘서트가 펼쳐집니다.

2014년 5월부터 '쌩목콘서트'라는 이름으로 2015년 11월 까지 총 8번의 어쿠스틱 콘서트가 집에서 열렸습니다. 

지금은 이사 간 옆방친구 '미소'와 함께 기획한 하우스콘서트였죠.

미소의 이사와 함께 아쉽게도 2년간의 '쌩목콘서트'는 유종의 미를 거두웠습니다.^^

 

공연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지온이를 격렬하게 산책시키고 ^^ 집안 이곳저곳의 먼지들을 털어내고

화장실도 반짝이게 청소를 합니다. 어떤날은 30인분의 음식을 주방에서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하루종일 손님맞이, 공연준비에 그 전날부터 바짝 긴장을 하곤 합니다.

 

지난 토요일 2016년 2월20일 오후 5시

이번엔 특별히 '세상에서 가장작은 콘서트: 홈메이드 콘서트'의 30번째 콘서트가 가회동 3ㅈhouse에서 열렸습니다.

 

약 1주 전부터 홍보를 하고 예약을 받았습니다.

소규모하우스 콘서트여서 예약은 20명 한정이었고 콘서트 3일 전 조기매진도 되었습니다.^^

이번 콘서트는 22명이 예약을 해주셨고 약 25명의 사람들로 방과 거실이 꽉찼습니다.

제방의 침대와 옷걸이를 작은 방으로 옮기고 방과 거실사이의 미닫이문 2짝을 떼어 한쪽 벽에 붙여 두었습니다.

일상을 책임지던 방과 거실은 무대와 관객석으로 바뀌었고,

비로소 한 단번, 단 한곳의 특별한 공연장이 되었습니다.

 

 

 

 30번째 홈메이트 콘서트의 뮤지션 '싱어송 라이터 임현정' 님과 '지고'님 

어릴적 상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명가수가 내방에서 노래를 해주는 상상.. ^^

살다보면.. 그런날이 정말 오게되네요 :)

 

 주택가에 위치한 3ㅈhouse여서 한번도 음향장비를 써서 공연을 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신기한 장비들이 방안을 채워 좋은 소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랜시간 한쪽 벽을 채워준 저의 책장이 오늘은 특별히 무대의 뒷 배경이 되었습니다.

노래의 감정이 모두의 발까락으로 표현된 :) 진~한 공연이었습니다.

양파같은 매려의 '지고'씨의 음악에 모두들 푹 빠져버렸습니다.

오후5시에 시작된 공연은 7시가 다 되어 끝이 났습니다.

 '지고'님의 그 옛날 만드셨다는 '고양이'라는 곡과 함께...

 

 

집으로 들어오듯,

버스에 내려 골목을 걸어 대문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관객들을 이 공연장에 들어오게 됩니다.

낯선 방은 이지만, 단지 방이어서 편안한 그곳에 앉아 음악을 듣습니다.

 

나의 바로 앞, 무대도 객석도 구별되지 않는그곳에서 진심을 다해 뮤지션은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합니다.

뮤지션들은 시간을 여행하듯 그들의 비밀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집은 슬픔과 기쁨 우울함 즐거움 ... 많은 감정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기에 매번 공연이 열릴 때마다 저의 비밀과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비밀이 뒤섞여서

제게는 세상에 단 한뿐인 공감과 추억을 '집'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오신 모든 분들이 그러하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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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靑春)이라는 말은 과연 인생의 어느 시기부터 어느시기 일까요?

올해 31세가 되는 저는 과연 청춘인 걸까요. 아닌 걸까요?

푸를 청. 봄 춘- 아마도 사절기의 그 시작점의 푸르름과 같은 시절이라는 것이겠지요

인생을 100세로 두고 보았을때^^, 이미 저의 시간은 뜨거운 여름날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청춘의 한가운데 만난 친구들이 있습니다.

일명 경대핑클로 부리우던 ㅎㅎ 동전노래방 매니아였던 저를 포함한 4명의 망아지같은 여인들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기 전, 고향인 대구에 있는 '경대'에서 1학년을 보냈었습니다.

한학기 수업 참여와 일년의 휴학 그리고 남은 한학기를 수료해서 1학년을 2년에 걸쳐 다녔던 것입니다.

 

수능날 아침에 먹은 미역국때문이었는지 그날 점심으로 싸간 죽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녀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는지...

서울드림을 꿈꿨던 20대의 시작은 그렇게 고향의 대학교에 '부적응'을 동반한 채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들은 다들 비슷한 상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불덩어리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청춘의 시간.

 

그때 '공강'이라는 고등학생 따위는 누리지 못하는 꿀같은 시간이 왔을때

우린 동전노래방의 작은 상자속에서 소몰이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축제'떄는 잔디를 뽑아 전도 부쳐보았고, 널디너른 캠퍼스를 술 취한채 고성을 지르며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복학생'이라 불리는 시커먼 남정네들을 피해 다니며 키득거리기도 했었지요.

 

그렇게 마음 속의 불덩어리를 식혀가며 각자가 어떤 삶을 원하는 가를 고민했고

4명 중 2명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 재입학을 했고 2명은 대구에서 대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우리 4명은 10년 전 생각도 하지 못한 모습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사는 방법도 다르고 하는 일도 제각각이지만 그 청춘이란 시간속에 아로새겨진 습관과 같은 것들은

지금의 우리를 같은 모습으로 묶어주기도 합니다.

 

'경대핑클' 중 '마텽'을 맞고 있는 '주소'가 어느날 딸기청을 담궈 온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추운 겨울이면 타향인 서울하늘 아래에 모여 함께 '청'을 담그곤 합니다.

그 중 우리가 함께 처음 담근 '청'은 바로

'사청' 입니다.

 

<만드는 방법>

베이킹소다로 사과를 깨끗이 씻어서 작은 조각으로 잘란낸 후

밀폐용기에 사과와 설탕을 1:1로 번갈아 가며 채워줍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깨끗하게 씻은 작은 계피스틱을 넣어 줍니다.

그리고 밀봉을 한 다음

상온에서 3일을 숙성시키고 냉장고에서 4일을 숙성시키면 

우리의 청춘을 닮은 푸르른고 알싸한 맛의'사과계피청'이 완성됩니다.

 

<마시는 방법>

뜨거운물 한컵에 '사과계피청' 큰숟가락으로 한 스푼

탄산수와 함께 마셔도 맛있고

우유나 요거트와 함께 먹어도 맛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뜨거운 물에 사과계피차를 마실때면 왠지모를 마음의 위로가 되곤 합니다.

사과는 비타민 C와 유시간이 풍부해 피로해소에 좋으며 계피는 몸을 따뜻하게 해줘

겨울철 체온을 유지하는데 좋다고 합니다.

사과의 달콤함과 싸한 계피향의 어울어 짐이 차에 담겨 부드럽게 마실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는 토요일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과 사과계피차를 나눠 마실 생각입니다.^^ 

 

 

 

 

 

 

 

 

 

 

유난히 강렬한 한파가 있었던 올해의 겨울도 끝이 났습니다.

몇일 전 올겨울 마지막 '사과계피청'을 담궜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4명 중 유일한 기혼자인 '쁘띠'가  새생명을 순산했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 들었습니다.^0^

 

뜨거운 청춘의 시간이 익어 꽃를 피우는 여름의 시간이 오는 것 처럼

모든것에는 그것이 익어가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청춘일 때에는 알지 못했던 그 시간의 의미...

 

청(淸) 이 익어가는 침묵의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님을 비로소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Dear. Mr. Angelato

 

Ahoj- Jak se mate?

I am Kim from Korea and I was exchanging student in AMU two years ago.

And I am fine in Seoul, Korea -I miss Angelato!

I am not sure that you remember me or not..:)

From October in 2010 to February in 2011 I was in Prague as student of Architecture studio in AMU

and I was also student in Chris's class 'Czech Culture'.

At that time, I was seeking delicious gelato in Prague cause I am just falling in love with gelato after trip in Italy before Prague.

By chance, Chris introduced me Angelato then I frequently visited your nice gelato shop with happiness.

 

안녕하세요 사장님 ^^

저는 한국의 김민지이고 2년 전 프라하 AMU에서 교환학생을 했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잘 지내며 안젤라또의 젤라또를 그리워 합니다.

사장님이 저를 기억할지 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

나는 2010년 가을학기 AMU에서 건축을 공부하였고 Chris 선생님의 체코 문화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젤라또에 매료되었고 프라하에서 맛있는 젤라또를 찾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Chris가 안젤라또를 소개해주었고 그 후 나는 행복감에 잠겨 자주 안젤라또를 방문했습니다.

 

 

Angelato was a place to find peace with amazing gelato,

 your kindness and familiar space for five months in Prague.

So before when you got a winter vacation in January 2011, I gave some drawings about interior of Angelato

for expressing how much I was happy with your gelato.  

From then, I found it in my heart to wish to share this delicious gelato with people in Korea

which makes people happy and comfort.

 

I just graduated my University -Architecture course- in Korea last February and

I plan to go to  Bologna in Italy for learning how to make gelato for 2 weeks in special-school of gelato ‘Carpigiani Gelato University’

And then I will travel in ltaly for about 2 weeks for experiencing Italian gelato.    

 

 

프라하에서 지낸 5개월 동안 안젤라또의 맛있는 젤라또와 사장님의 친절함과 따스함

그리고 편안한 안젤라또 매장은 나에게 마음의 은신처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20111월 안젤라또가 겨울휴가를 보내기 전 나는 이별과 감사의 마음으로 안젤라또 매장의 도면을 당신에게 선물했었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히 나는 한국에서도 안젤라또 같은 맛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행복과 위안이 되는 젤라또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올해 2월 나는 대학교를 졸업했고 올 5월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는 젤라또 전문학교에서 2주간 젤라또를 배울 계획이고

그리고 2주간 더 여행을 하며 이탈리아의 젤라또를 경험 할 것입니다.

 

After Italy, I fully wish to do internship in Angelato for learning your mind and art of your nice gelato for a month

-hopely in middle of June to middle of July–

This is earnest wish of my heart.

Thankfully, if you give me a chance to be with Angelato,

I am ready to study diligently and to work sincerely! 

 

그리고 가능하다면 안젤라또에서 한달동안(6월 중순에서 7월 중순 ) 인턴을 하며 당신의 마인드와 안젤라또의 맛을 배우고 싶습니다 

사실 이것은 아주 절실한 마음입니다.

고맙게도 당신이 나에게 기회를 준다면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일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Thank you for your reading and I will wait for your reply.

I also hope that this letter can be a piece of good memory for you which is from people

who respect your space, your mind and your gelato.

Spring just arrived in Korea.

In this summer, I hope to be with your great gelato in beautiful Prague where is winding streets and peaceful hills.   

Thank you so much.

 

읽어주어서 고맙고 답장을 기다리겠다.

나는 또한 이편지가 당신의 공간과 마음 그리고 젤라또를 존경하는 사람으로 부터의 좋은 기억의 한 조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봄이 왔다. 올 여름 굽이치는 골목과 평화로운 언덕이 있는 프라하에서 젤라또를 맛보고 싶다.

고맙습니다.

 

 

 

2012년 4월,

이 구구절절한 편지를 프라하에 있는 친구를 통해 Amgelato이 사장님에게 전달 했고

아쉽게도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해 8월 나는 프라하에서 다시 Angelato의 젤라또를 맛보게 됩니다.

 

 

 

2010년 부터 거스로 올라가는 사랑이다.

그때 부터 쭈욱 사랑하고 있다.

 

달콤하고 차가웠던 그 사랑의 시작은

2010년 가을이었다.

6월부터 시작된 여행과 타국생활에 가을엔 알게 모르게 향수병이란 것이 찾아왔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 프라하예술을 가르치는 국적불명의 선생님으로부터 프라하에 정말 맜있는 젤라또 집을 소개 받았었다.

 

체코에서 파는 젤라또가 뭐 그리 대단한 맛이겠냐.. 큰 기대없이 친구들과 쫄래쫄래 그 젤라또 집엘 따라갔었다.

그날 아마도 망고 젤라또를 먹었었을 것이다.

유리 그릇에 노란 젤라또를 가득 담고 설탕을 넣지 않은 덤덤한 생크림도 올려 주었다.

 

젤라또집 사장님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이었나...? 체코사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체코 프라하의 예술학교의 교환학생이 었던 나는 당시 프라하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매우 심드렁한 상태였으며

건축을 공부함에도 도시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그곳에서 땅바닥만 쳐다보며 지냈었다.(조금 과장하자면..)

 

물론 얼마지나지 않아서 나는 체코의 색바란 붉고푸른색들과 볼타강을 사랑하게 되었고 사슴계곡에서 혼자 영화를 찍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을 엄청 잘마시는 맘착한  체코친구들을 만나 새벽까지 안주없이 술만 주구장장 마시기도 했다.

1인 당 술소비율 세계랭킹 5위쯤 되는 체코이다.

 

여튼 학기가 시작하고 나는, 그래... 우울했다.

집에 가고싶었다.

그런 지독한 향수병에 걸린 내게 운명처럼 찾아온 명약은 프라하 시내 어느 귀퉁이의 작은 angelato라는 젤라또집의 젤라또였다.

 

지구상에,

어느 대륙에나,

일정한 맛을 가진 음식이 딱 두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

초콜렛

그리고 아이스크림

 

그 두 음식은 사람에 따라 향수병의 명약이 될 수 있음을 젤라또를 맛 본 그날 나는 알게되었다.

그 중에서 통칭 아이스크림 종(種)에 속하는 젤라또는 한순간에 나를 한국으로 체코로 이탈리아로 그 어딘가로 데려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그날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안젤라또(angelato)를 방문했다.

에스프레소 한잔에 젤라또 작은거 하나.

어떤날은 안젤라또 사장님이 남은 젤라또를 포장해 주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그 심심한 생크림의 맛

젤라또의 감촉과 바삭거리던 콘의 식감

작은 색색의 투명스푼과 겨울날 축축한 타국의 길 위를 젤라또를 한입 물고 걷던 나와 친구들

 

아마도 흥얼거렸었던것 같다.

우습게도 내게 프라하는 젤라또의 도시가 되었고 2년 후 이탈리아로 젤라또를 배우기 위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나는 안젤라또 사장님에게 편지(일종의 팬레터)를 전하게 되고

또 다시 그 유리그릇 속 심심한 생크림이 올라간 안젤라또의 젤라또를 맛보게 된다.

   

 

 

  

 

 

 

 

 

  

이 글은 '일상을 요리하다'라는 카테고리의 첫 글이다.

'일상'과 '요리'란 이야기를 어떻게 이 블로그에 담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폭주하는 이미지의 시대다.

10년 전 도토리를 모으며 배경음악을 구매하고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올리고 일기를 쓰던 싸이월드의 시대는 완전히 끝이났다.

각종 소식들로 가득한 화면에 일종의 영역표시인 '좋아요'를 무의식적으로 눌러대던 페이스북의 글들도 이제는 귀찮아졌다.

2016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입을 했고.. 끝까지 '하지 않겠다' 결심한 나 조차도 ' 인스타그램'에 가입했다.

인스타그램에서 긴글은 '쿨 하 지' 못하다. 이미지와 헤시테그면 충분하다.

(아직 인스타그램의 정확안 어원이 무엇인지 헤시테그는 어떻게 나온 단어인지 알지 못한다)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인 매체를 통해 우리는 '소통'한다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장식 올라오는 사진들, 끊이없이 내려지는 스크롤... 과연 그 끝은 있을까 싶다.

그 끝없음 만큼 우리들은 그 누군가와 진정 소통하는 것일까?

있다면, 그 소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인스타그램에서 슬프거나  비참하거나 더러운 이미지를 본적이 거의 없다.

멋지게 찍은 다큐사진 등에서 그 비슷한 사진을 본적이 있지만 그것은 강렬한 색감을 가진 슬프장면을 찍은 멋진 이미지였다.

인스타그램 속 세상은 비현실적 행복의 세상이며 증명되지 않은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고되고 슬프기도 하며 뼈가 시리게 추운 다층적 감정이 가득한 세상인데 인스타그램의 세상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속의 소통이 그리 맘 편하지만은 않다.

 

진정 행복한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적 행복'에 둘러쌓여있다.

 

이미지적 행복의 정점에 '킨포크'가 있다.

 

소셜테이너 이효리의 블로그도 있다.

 

 

 

킨포크적 삶의 방식과 이효리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픈 것은 아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의 유사성은 우리들의 인스타그램의 이미지에서도 나타난다.

심지어 '킨포크 스타일로 사진찍는 법'이라는 글도 있었다. 우리는 도시에서도 킨포크적 이미지로 포틀랜드의 여유로운 삶을 흉내를 낸다.

소셜테이너 이효리님도 제주도에서 '킨포크'적 외래 행복을 이미지로 담는다.

각종 필터가 장착된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그 흉내를 보다 쉽게 누구나 할 수 있게만든다. 

우리는 디스토피아적 세상에서 유토피아를 흉내며 매일같이 남몰래 좌절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통해야 하는 것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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