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집 가요"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말할 때
자주 '가회동 집'이란 이름을 사용한다.
그 집-은 단순히 '집'이란 물성이 아닌 '가회동 집'이란 장소를 동시에 담고 있다.
이는 여러차례 이사를 전전한 나의 이십대의 행보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머문지 4년이 넘어가는 가회동 집을 생각해 보면, 떠돌아 다닌 사실 보다는 역시 '가회동'이라는 장소 자체가

내게 '집'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내게 '가회동집'의 범주는 작게는 대지 40평가량에 있는 3ㅈhouse의 마당과 7칸의 한옥채를 뜻하고,

정서적으로 내게 많은것들이 친근한-숫가락 수를 아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사람들과 상호들이 붙어있는

창덕궁과 경복궁 삼청공원 사이에 놓인 북촌을 뜻한다.

그리고 좀 더 확장해보자면 3ㅈhouse 마당에서 보이는 남산까지... 실제로 남산까지 보도로 종종 걸어가곤 한다.

매일아침 동쪽에서 뜨는 햇빛에 의해 잠을 깨고, 낮엔 구름이 흐르는 것을 마당에 지는 구름 그늘로 느끼게 된다.
일상의 사물들 보다 일상의 자연의 흐름이 친숙해지는 집이 바로 '가회동 집'이다.
4년의 시간동안 동거한 '가회동 집, 3ㅈ house'와 나는 닮아가고 있을까?
지난 4년 간 장마 내, 습기에 축축해져 생긴 벽에 생긴 얼룩처럼 내 마음에도 여 기저기 얼룩이 생긴 것을 보면,

가회동 집과 나는 서로 닮아가고 있는 것도 같다.

 

[2012년 9월12일의 기록]

 

 

올해로 머무른지 8년이 되어가는 가회동집-3ㅈ house-는 북촌한옥마을에 위치한 정망 좋은 한옥집이다.

2013년 2월 처음 이사를 왔을때는 '한옥마을'이란 이름이 없던 그냥 '북촌'인 동네였었다.

지금은 서울의 주요 관광지로 매일 아침 출근길 전 세계를 여행하는 듯  많은 외국인들을과 마주하는 동네가 되었다.

 

오늘 아침 골목길을 쓸고 있을 때 외출하시는 옆집 아저씨를 만났다.

새해 복 맣이받으라며 먼저 인사를 건내 주셨다.

"지온이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3ㅈhouse이 마스코드인 멍멍이 지온이에게도 새해 인사를 해 주셨다.

오가는 인삿말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겨울날 아침이었다.

마주치는 눈이 어색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원룸을 전전하다 머무르게 된 동네에서 나는 나의 20대를 보냈었고 30대가 된 지금도

동네의 많은 변화들을 몸소 느끼며 여러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다.

 

   

2012년 2월 무려 6년이나 다닌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참으로 호기롭게도 그해 5월에 여행을 떠나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취업걱정이 없었던 이상한 졸업생이었는데... 자신감이었는지 아무생각이 없었는지...

생각한대로 일들이 이루어지던 호시절이었다.

 

겨울방학 이후 부터 여행을 떠나기 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었지만 3월 부터는 공식적인 백수가 되어

함께 살던 또 다른 백수 친구와 다시 없을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기도 했었다.

이 여행의 이유는 (이유는 만들기 나름이다) 명분상 '직업을 가지기 전 마지막 일탈' 이었고

좀 더 그 이유를 단단히 하기 위해 '건축기행'이란 부제목을 붙였지만 ..

사실 2010년 부터 매료되었던 '젤라또'(이탈리아 아이스크림)만들기를 배우기 위한 여행이었다.

내가 젤라또 만들기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젤라또 가게를 차릴거냐 물었었다.

어떤 분은 비행기 값을 내어 줄테니 다녀와서 동업을 하자는 제안을 던지기도 했었다.

'취미로 젤라또를 배우겠다'고 말했을 때 몇몇은 황당해 하기도 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재밋겠다'며 나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 문제의 나의 '젤라또'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겠다.

 

6년이나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사무실 취직을 아마도 앞두고 있었던 내가

젤라또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간다는건 사실 넌센스일지도 모르지만

이 보다 달콤한 여행의 이유가 또 어디있을까. 그리고 그 여행의 후반에는 '인도'라는 거대대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년이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2012년의 계획처럼 건축사무실을 다니고 있다.

젤라또를 여전히 좋아하며 언제가 취미처럼 만들어 다른사람들과 나눠 먹을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여행의 기록들은 나의 노트와 당시 글을 썼던 블로그에서 발췌하였다.

   

 

[2012년 5월 18일 출국 직후]

 

아침까지 집착투성이에 끝내지 못한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혼자였으면 하지 못했을 일들을 친구들 덕분에 공항에서 다 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자동출국심사 신청도 했다!^^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전화가 이어졌다.

여전히 내 말초들에 연결되어있는 수많은 붉은 실들이 나의 지난 길들에 늘어져 있었다


 

 


5월 19일 밀라노에서 먹은 첫 젤라또^^
나의 젤라또 맛의 척도는 티라미수 와 딸기맛이다.

티라미수에서는 정성을 엿볼 수 있고
딸기에서는 재료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The Gazzelle in Milano

밀라노 두오모 근처 아케이드에 있는 샵이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관광지의 클레식한 젤라또 샵이었다.

티라미수와 복숭아 맛을 먹었다.
추천 만큼의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지만^^ 티라미수 젤라또 속 촉촉하게 적셔진 스폰지 케잌과 크림의 조화가 멋졌고
무엇보다 복숭아 젤라또에 촘촘히 박혀있던 복숭아 조각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한입 베어물고 안도감과 김장감이 함께 왔다.


ps. 관광지나 엄청난 번화가 보단 경계 쯤에 위치한 곳에 맛집이 많단 사실은 젤라또에도 적용된다!

The first gelato in milano,italy.

I visited a gelato shop near duomo.
I tried tiramisu and peach gelato there.
Two was quite nice.
Tiramisu -one of my favorite :)-, it has good balance between sponge cake and gelato cream.
And in the peach gelato there were many pieces of small peaches! Lovely!

I felt kind of relief and tension at the sam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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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인도를 떠나기 전 인도에 대한 소설 몇권(상실의 상속/작은것들의 신/적절한 균형)과

수필 몇 권(길에서 만나다/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을 읽었었다.

읽었던 소설들은 현대 소설들이었는데 내게는 마치 고전소설을 읽는 듯한 시간을 거스른 낯설음이었다.

그리고 내게 인도여행은 그 낯설음을 온몸으로 겪었던 나날들이었다.

 

 

...지난 밤

검은 때가 잔뜩 고인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

어두움이 무서운 곳이어서 더 무서운 나의 상상 때문에 나는 불을 켜둔 채, 기절하듯 잠이 들기를 바랬다.

하지만 결국 내 손으로 소등을 하고 말았다.

새벽 3시쯤부터 몸은 엉망으로 침낭 위를 헤엄쳐 다니고

생각은 그 낯선 방 안을 떠다니며, 이것저것에 진저리 치기 시작했다.

 

뭐 하나 제대로 된것이 없는 나라 (내 기준이 맞는 것이 없는...)

정직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나라

비싸지도 않은 그 가게 앞에서 내게 문을 열어주는 그것도 싫어.

자는 동안 문밖, 창밖에서 들리는 그들의 언어에 문득 놀라 낯설어 하는 나에 대해 잠 속에서도 놀랐다.

소리마저 결벽증에 걸려 버렸다.

 

이방인으로 살기 힘든나라

제멋대로 치고 들어와서 만신창이가 되게 하는 나라

내 눈동자는 의심 가득한 물음표가 되어

'왜?'라는 단어는 저 어디 골목 보도블럭사이에서 찟겨 졌다.

6주가 다 되도록 단 하루도 내가 인도에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나는 몸이 굳은 사람처럼 뼛쭛뼛쭛했고

정신도 굳은 사람처러 생각이 작동되지 않았다. 

그것이 이 땅에서 생존을 위한 마찰을 줄이는 방법이었다는 듯이...

 

 

「2012년 8월 8일 인도, 콜카타(kolkata)에서 쓴 글 발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던 무렵부터 매일 밤이면 잠들기 전 '일기'를 써야만 했다.

심지어 그 '일기'를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던 적도 있었는데 -강제적으로 해야했던 '일기'라는 형태의 글쓰기 방법은 꽤나 귀찮은 행위였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거친 종이 위 연필로 한자한자 적어갔던 이야기들은 의심할 나위 없는 '나'에 대한 기억이었고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 되었었다.


시간이 흘러 - 너무 많은 글과 이야기들 속에서 부유하듯 그 속을 지나가는 나를 발견하였다.

읽는 글은 더 많아 졌지만 생각하여 스스로 쓰는 글은 거의 전무 하였고

하루 종일 종알거리며 말만 밷었지 스스로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2015년을 돌이켜 보며 노트에 새해의 결심을 끄적였다. (겨울은 반성의 계절인가 보다)

'...글을 쓰는 버릇을 들여야 겠다. 점점 글 속에 중심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가 없는 조용한 곳에서, 언어로 빈페이지를 차곡차곡 채우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행위 뿐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는 일이다.

글을 쓰면서 쉴새 없이 함께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정제된 글을 쓸 때에는 '침묵'하기 마련이며,

이 '침묵'이라는 것은 언어의 과잉으로 가득찬 도시 안에서 누리기 힘든 호사이기도 한 것이다.


'...2016년은 2015년과 마찮가지로 365일이라는 날들이 내게 주어질 것이다. 쫓기지 않고 피하지 않고 한땀한땀의 지혜가 이끄는 시간이길 바란다. 

글을 읽는 시간만큼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길 바란다...'


글을 읽는 일,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썼던 어린날들의 '일기' 처럼 -늘 하루를 반성하고는 했으니- 지혜를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식은 넘쳐나고 손쉽게 손에 잡을 수 있지만 지혜는 끈임없이 갈구하고 정성을 들여야 가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램과 바램이 겹겹히 쌓인 한해의 끝자락에서, 그 '글쓰기'라는 행위를 시작한다.



2015년 12월13일 일요일

아현동 카페 soma에서


노트발췌 글 2015년 12월 4일 일요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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